국어와 영어는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하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 미적분을 쓸 일은 별로 없다. 그렇다면 우리 대학입시는 왜 수학을 시험과목에 둘까? 심지어 수학을 잘해야만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도록 하고 있을까? 최근 수학 관련 다큐멘터리가 방송상을 받았다. 현대사회에서 수학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알아봤다.

 

EBS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문명과 수학’ 5부작이 최근 방송통신위원회 방송대상을 수상했다. 이 프로그램은 백상예술대상 작품상도 받았다. 수학을 문명과 연결해 풀어낸 수작이라는 것이 이 프로그램에 대한 평이다. 수학의 발원지인 이집트를 찾아 수란 무엇인지를 탐구하고, 인도를 찾아가서 0의 탄생 배경을 살펴보고, 뉴턴과 라이프니츠의 발자취에서 근대 수학의 최고봉인 미적분의 함의를 알기 쉽게 설명해내고 있다. 수학을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조망한 점이 특징적이다.

이 다큐멘터리를 계기로 문명과 수학의 관계를 다룬 신간서적도 나오고 있다. 사실 수학의 역사를 이야기하자면 단편적으로 이집트, 그리스, 인도 등 옛 문명을 언급할 수밖에 없다. 문명과 수학의 관계를 다룬 기존 도서도 꽤 된다. 하지만 독자로부터 외면받았다. 사람들은 수학이라면 일단 손으로 머리를 싸맨다.

그러나 수학은 인류 문명의 토대라고 할 수 있다. 인류는 수학을 이용한 덕분에 여기까지 발전할 수 있었다. 좀 과장하자면 수학을 외면하는 것은 문명의 근원을 부정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럼에도 왜 우리는 수학을 어려워할까? 답은 다양하겠지만, 누구나 떠올리는 공통의 답이 하나 있다. 바로 대학입시 교육의 후유증이다.

   

입시 때문에 수학에 학을 떼

초등학교 때부터 산수나 수학에 워낙 시달린 탓에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수학에 등 돌리는 이가 많다. 반면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스웨덴 소설 ‘밀레니엄’에서 여주인공 리스베트는 어려운 수학에 재미를 느낀다. 그녀는 천재적인 두뇌의 소유자이지만 정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덕분에 입시에 시달리지 않았다. 그러니 20세기 수학의 최대 난제이자 ‘문명과 수학’ 다큐멘터리 마지막 편의 주제이기도 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에 리스베트가 꽂힌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수학은 원래 천재들의 지적 장난감이었다.

“우리 청소년이 입시 교육 때문에 수학에 학을 떼지 않았다면 수학의 노벨상이라 할 필즈상을 받는 사람이 진작 나왔을 것”이라고 한탄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소설에서도 주변 사람들은 어려운 수학책을 끼고 있는 리스베트를 이상하게 생각한다. 스웨덴 같은 북유럽국가는 입시 지옥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학을 멀리하는 태도는 국가나 교육제도와는 무관한 보편적 현상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논의를 세분해보자. 첫째, 지적 유희를 즐기는 천재는 수학을 좋아한다. 그런데 한국인은 아직 필즈상을 못 받고 있다. 둘째, 보통 사람은 수학에 별 매력을 못 느낀다. 입시 교육은 아예 수학을 외면하도록 부추긴다. 똑같이 지겨운 입시 과목임에도 영어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도 비용과 시간을 들여 계속 배운다. 사회가 그렇게 하라고 요구하기 때문이다. 수학은 그렇지 않다. 입사할 때 수학 점수를 따지는 일은 거의 없다. 미적분을 잘한다고 높은 평가를 받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수학을 잘하는 천재가 의사라는 직업을 택하도록 만든다.

복잡하기 그지없는 방정식 문제를 풀다가 반항적인 눈빛으로 “대체 이런 걸 왜 배우는 건가요?”라고 묻는 학생들을 위해 교사는 나름의 대답을 준비해야 한다. 두뇌 발달을 위한 지적 훈련이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 능력을 계발하기 위함이다, 수학을 응용하는 분야에 진출하기 위한 준비 과정이다, 시험에 나오기 때문이다, 너 잘되라고 하는 것이다, 나중에 네 스스로 답을 찾아보도록 하라 등.

이집트, 그리스, 중국 같은 고대 문명에서는 이유가 더 분명했다. 수학이 곧 권력이었다. 수학 지식은 치수와 농경의 근간이기도 했고, 세계와 자신과 신을 잇는 수단이기도 했고, 미래를 예측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거대한 피라미드를 설계한 사람, 거의 무한한 시간을 다루는 신화 체계를 구축한 사람, 강수량의 변화를 헤아려 치수 계획을 짠 사람, 천체의 순환 주기를 헤아려 역법을 만든 사람은 수학 지식을 갖춘 권력자였다.

수를 우주의 근본 원리라고 보고 수학 지식을 지키기 위해 비밀주의와 신비주의를 철저하게 고수한 피타고라스학파는 극단적인 사례다. 이런 태도가 지나쳐 대중에게 위화감을 일으켰다. 이것이 피타고라스학파가 몰락한 이유 중 하나다. 지식을 적당히 독점해야지 완전 독점하면 안 되는 법이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수학은 권력과 점점 멀어졌다. 사회구조가 아무리 복잡해져도 수학이 모든 분야의 토대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수학은 더 이상 비밀 지식이 아니었다. 다리를 놓고 집을 짓고 개간을 하고 옷을 짓고 세금을 걷고 하는 데에 수학이 꼭 필요했다. 다만 누구나 그 지식을 배우고 쓸 수 있었다. 수학은 권력을 위해서가 아니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배우는 것이 되었다.

 

수학이 인생을 좌우한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수학도 발달한다. 수학의 천재들은 더 복잡하고 난해하며 삶과 무관한 듯 보이는 수학 문제를 창안했다. 안타깝게도 현실과의 괴리가 큰 탓에 이런 수학 지식은 권력을 안겨주지 못했다. 응용할 수 없는 수학은 무용지물이다. 그러나 과학이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는 바람에 한때 쓸모없어 보이던 수학 지식도 응용될 자리를 찾곤 했다. 과학은 새로운 이론에 적합한 수학 지식이 눈에 띄지 않으면 새로운 수학 지식을 창안하기도 했다. 이러면서 수학은 현대 교육 과정에도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그럼에도 ‘수학을 과연 누구에게 어느 수준까지 가르쳐야 하는가’라는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비판론자들은 “일상생활에서 거의 쓰이지 않는 어려운 미적분 문제를 모든 고등학생에게 가르칠 필요가 있는가?” “사회에 진출하면 까맣게 잊을 텐데?”라고 반문한다. 이 점은 수학을 왜 배우느냐라는 질문에 말문이 막히는 이유 중 큰 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나 사실 ‘수학을 왜 배우는가’라는 질문은 ‘어느 수준까지 배우는 것이 적당한가’라는 질문에 가깝다. 구구단도 수학의 일종인데 우리는 구구단을 익혀두지 않으면 인생을 살아가는 데 매우 불편하다는 점을 잘 안다. 즉 일정한 수준까지 수학을 배워 둬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실제에 있어 ‘수학을 왜 배우는가’라는 질문은 한가한 이야기다. 우리나라의 대학입시에서 수학이 차지하는 변별력 비중은 매우 높다. 수능 점수로 진로가 어느 정도 결정되는 우리 사회 시스템에서 수학은 인생을 좌우하는 문제가 된다.

수능에서 수학의 비중이 높은 이유는 ‘수학이 사회의 발전에 꼭 필요한 학문’이라는 점과 관련이 있다. 예를 들어 미적분을 모르면 미시경제나 거시경제를 논할 수 없다. 수학적 개념 없이는 재무제표를 볼 수 없고 재무제표를 못 보면 경영을 제대로 할 수 없다. 이공계에선 더하다. 수리적 이해 없이 세계 일류 스마트폰, TV, 반도체, 자동차, 유조선, 초고층빌딩을 만들 수는 없는 법이다. 국가의 처지에선 대학입시에서 수학